세대를 넘어 추앙받는 감독들, 그리고 이른바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의 이면에는 많은 이야기와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때로는 감독의 범상치 않은 유년 시절의 전설이, 때로는 영화의 흥미로운 제작기가, 그리고 때로는 영화를 둘러싼 추악하고 끔찍한 비극이. 불행하게도 영화사에 기록된 크고 작은 사건들은 선례들 보다는 후자의 경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2)가 정확히 그런 케이스다. 20대에 이미 이태리를 대표하는 감독이 된 천재 아티스트 베르톨루치와 황금기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배우 말론 브랜도의 만남 모바일바다이야기 은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받기 이전부터, 혹은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미 세기의 사건이자 역사적인 조우였다. 물론 이는 영화의 악명높은 ‘강간 씬’의 전모가 폭로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특히 이태리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 프로젝트’에 연기경력이 전무한 신인 여배우를 기용하겠다는 베르톨루치의 의지는 더욱 큰 세간의 관심이 모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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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스틸컷 / 사진제공. 찬란


캐스팅 당시 19세의 신인 여배우였던 마리아 슈나이더의 발탁은 그럼에도 꽤 영리하고도 도전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그녀는 프랑스의 유명 배우 다니엘 겔린의 혼외자로 태어나 생모에게도, 아버지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바다이야기온라인 존재였지만 그러한 불행은 궁극적으로 그녀로 하여금 영화라는 또 다른 세계(그녀가 인정받을 수 없는 이 현실 세계가 아닌)에 더 큰 열망을 갖게 했다. 당시 <순응자> (1970)로 이태리 뿐만 아니라 70년대 유럽의 작가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선택은 결핍과 도피로 점철된 슈나이더의 삶에 필연적인 돌파구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감독의 전작인 <순응자>가 품고 있는 정치적인 메타포와 지독히도 추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영화적 이매저리(imagery)와는 거리가 먼, ‘통속물’에 가까웠다. 영화는 파리에 살고있는 중년의 미국 남자, 폴(말론 브랜도)이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중 우연히 길에서 잔느(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며 시작된다. 남자와 여자는 파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의미 없는 성관계를 갖고 기약 없이 해어진다. 이후로도 우연을 가장한 이들의 만남은 계속된다. 다만 점점 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말이다. 급기야 폴은 급작스러운 관계를 거부하는 잔느를 겁탈한다. 이후로도 이들의 밀회는 이어지지만 궁극적으로 폴의 상처와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잔느는 그에게로부터 탈출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탈출의 끝에서 잔느는 강제로 그녀를 붙잡아 두려는 폴에게 총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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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스틸컷 / 사진제공. 찬란


아내의 외도와 자살에 상처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한 젊은 여자를 향한 성적인 집착을 키워가다가 여자를 강간하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맞는 이 치졸한 이야기에 베루톨로치는 어떤 ‘예술적인 야망’을 품고 실현하고 싶었던 것일까작품의 더 큰 패착은 유능한 감독의 그저 그런 작품으로의 돌진이 아닌, 사실상의 인권 유린이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강간 장면에서 감독은 강간을 보여주는 데 있어 ‘버터’를 이용하자는 말론 브랜도의 현장 아이디어에 동의했고, 캐릭터에게 공포와 굴욕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이를 마리아 슈나이더만 비밀로 했다. 영화사상 가장 끔찍하고 치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는 ‘버터 강간 씬’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슈나이더에게 장면의 수정을 고지하지 않은 채 브랜도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켰고, 그 결과로 탄생한 ‘잔느’의 울부짖는 모습은 실제 공포에 질린 슈나이더의 몸부림이 담긴 영상 기록물이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의 조연출로 영화 커리어를 시작한 제시카 팔루드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은 영화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을 베르톨루치가 아닌, 이 사건의 피해자, 마리아 슈나이더의 시점에서 재현한다. 따라서 영화는 슈나이더의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제작될 당시 주연 배우로 참여했음에도 제작 과정에서 배제당했던 슈나이더에게 시점과 목소리를 부여한 사건 일지에 가깝다. 슈나이더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후로 사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약물 중독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한 영화가, 그리고 두 명의 이른바 ‘거목’들은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한 신인 여배우를 완전히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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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스틸컷 / 사진제공. 찬란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한 평범한,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십 대 여성의 꿈 같은 일상을 영화의 배경인 파리만큼이나 로맨틱하고 서정적으로 그린다. 올해 칸 영화제의 경쟁 섹션에서 처음으로 공개 된 영화는 작품의 완성도로도 칸의 관객들에게 인정받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전하는 위로와 일침, 그리고 열정의 양면에 대한 경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용기 있는 영화에게 한국 관객들은 과연 어떤 응답을 보낼지 궁금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