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사하라 사막서 냉면을 외치다사막에서는 사람의 체온을 지키려 뜨거운 민트티 등을 먹는데, 극한의 더위 탓에 냉면 등 차가운 음식이 절로 그리워진다. 정주영 촬영정오가 지나자 벽에 걸린 온도계의 빨간 기둥이 50도에 가까워졌다. 야간버스를 타고 사하라사막 어귀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나는, 밤투어를 기다리며 책을 보거나 동네를 산책할 생각이었다. 여행이 늘 그렇듯,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책을 읽거나 동네를 산책할 생각은 더위 앞에 모두 무너졌다.에어컨이 없는 50도라니. 그저 그늘에 누워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물을 2ℓ나 들이켰지만, 땀으로 모두 빠져나가 화장실 갈 일도 없었다. 실연에도 무너진 적 없던 식욕은 극한의 더위에 사라져 버렸다. 아, 이등병에게 국방부 시계가 이런 느낌일까 싶을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숙소에서 점심으로 내어준 토마토 계란볶음 앞에선 ‘맛’보다 이 더위에 어떻게 요리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다 싶었지만,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 국물과 쫄깃한 면발의 냉면이 떠올랐다. 평소엔 그다지 즐기지도 않던 음식이었는데, 그때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간절했다.왜 이렇게 더운 나라에 냉면 같은 음식이 없을까? 이 더위를 견디는 데 이보다 완벽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은데, 정작 현지에는 냉면을 대체할 만한 음식이 거의 없다. 한국에선 여름이면 누구나 당연하다는 듯 차가운 음식을 찾는데, 한국인만의 특징인가? 땀이 비 오듯 흐르던 그 오후, 관광객 대상으로 냉면집이라도 차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그 후로도 여러 더운 나라를 여행했지만, 냉면처럼 차가운 면 요리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는 자루소바, 나가시 소멘 등 여름에 즐겨 찾는 면 요리가 있고, 중국에는 량피, 량차이 같은 시원한 면 요리가 있지만 국물이 냉면처럼 차갑지는 않다. 동남아시아의 더운 나라들은 오히려 차가운 음식에 소극적이다. 태국의 얌운센은 녹두 당면에 해산물, 채소, 라임즙, 피시소스를 넣어 상큼하게 먹는 샐러드지만, 실온에 가까운 온도로 먹는다. 서양에도 차가운 파스타 샐러드나 스페인의 가스파초(차가운 토마토 수프) 같은 요리가 있지만, 식사로 차가운 면을 먹는 문화는 극히 드물다.사실 사막처럼 극한의 더위가 일■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사하라 사막서 냉면을 외치다사막에서는 사람의 체온을 지키려 뜨거운 민트티 등을 먹는데, 극한의 더위 탓에 냉면 등 차가운 음식이 절로 그리워진다. 정주영 촬영정오가 지나자 벽에 걸린 온도계의 빨간 기둥이 50도에 가까워졌다. 야간버스를 타고 사하라사막 어귀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나는, 밤투어를 기다리며 책을 보거나 동네를 산책할 생각이었다. 여행이 늘 그렇듯,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책을 읽거나 동네를 산책할 생각은 더위 앞에 모두 무너졌다.에어컨이 없는 50도라니. 그저 그늘에 누워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물을 2ℓ나 들이켰지만, 땀으로 모두 빠져나가 화장실 갈 일도 없었다. 실연에도 무너진 적 없던 식욕은 극한의 더위에 사라져 버렸다. 아, 이등병에게 국방부 시계가 이런 느낌일까 싶을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숙소에서 점심으로 내어준 토마토 계란볶음 앞에선 ‘맛’보다 이 더위에 어떻게 요리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다 싶었지만,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 국물과 쫄깃한 면발의 냉면이 떠올랐다. 평소엔 그다지 즐기지도 않던 음식이었는데, 그때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간절했다.왜 이렇게 더운 나라에 냉면 같은 음식이 없을까? 이 더위를 견디는 데 이보다 완벽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은데, 정작 현지에는 냉면을 대체할 만한 음식이 거의 없다. 한국에선 여름이면 누구나 당연하다는 듯 차가운 음식을 찾는데, 한국인만의 특징인가? 땀이 비 오듯 흐르던 그 오후, 관광객 대상으로 냉면집이라도 차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그 후로도 여러 더운 나라를 여행했지만, 냉면처럼 차가운 면 요리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는 자루소바, 나가시 소멘 등 여름에 즐겨 찾는 면 요리가 있고, 중국에는 량피, 량차이 같은 시원한 면 요리가 있지만 국물이 냉면처럼 차갑지는 않다. 동남아시아의 더운 나라들은 오히려 차가운 음식에 소극적이다. 태국의 얌운센은 녹두 당면에 해산물, 채소, 라임즙, 피시소스를 넣어 상큼하게 먹는 샐러드지만, 실온에 가까운 온도로 먹는다. 서양에도 차가운 파스타 샐러드나 스페인의 가스파초(차가운 토마토 수프) 같은 요리가 있지만, 식사로 차가운 면을 먹는 문화는 극히 드물다.사실 사막처럼 극한의 더위가 일상인 지역에서조차 차가운 음식이 드문 데에는 과학적 배경도 있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땀을 유도해 체온을 낮추고, 위장에도 부담이 덜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아프리카 유목민들은 한낮에도 뜨거운 민트티와 스튜를 즐긴다. 뜨거운 땅에서 시원한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