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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망유린
조회 42회 작성일 26-02-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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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천 심장병으로 입술이 파란 아이들. 예닐곱 살 전에 수술 받으면 평생 건강히 살 수 있지만, 1980년 초만 해도 숱한 아이가 치료시기를 놓치고 시름시름 앓다가 부모 가슴에 통한(痛恨)의 응어리를 남기고 먼저 떠나야만 했다.
세종병원은 집값과 맞먹는 수술비 때문에 아이들이 속절없이 숨지는 것을 격감시킨, 세계 의학사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병원이다. 설립자 우촌 박영관 회장은 심장병 어린이 가족과 함께 눈물 흘리다 "심장병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의료 불모지 부천에 심장 전문병원을 세웠다. 주위에서 한 야마토무료게임 결같이 뜯어말렸지만 한편으로 독지가를 찾아다니고, 한편으로는 수술실에서 영혼을 녹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세종병원은 국내에서 선천 심장병 환자의 1/3이 넘는 7000여 명을 수술해서 새 삶을 찾아줬으며, 해외 어린이 환자 1600여 명에게도 새 생명을 안겨줬다. 우촌은 정작 자신의 건강을 못챙겨 뇌졸중,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졌다 오션파라다이스예시 회복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아들 박진식 이사장이 인천과 부천의 세종병원을 세계적 병원으로 도약시키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세종병원은 대한민국 흉부외과 발전과 함께 했다"면서 "부천세종병원은 2030년 세계 10대 심장 전문병원에 진입할 것이고, 2017년 문을 연 인천세종병원은 세계 100대 병원 릴게임골드몽 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윤상선 기자
우촌은 한양대 의대 교수 때인 1981년 한 친척으로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가 일본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차관을 받아 병원 설립비를 장기 저리 바다이야기무료 융자해준다는 것. 딸의 수술비가 당시 집값에 맞먹는 1000만 원이라는 말에 낙담해 진료실을 나가던, 40대 아버지의 어깨 처진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 병원이 있으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텐데….
이 무렵 경남 남해 섬마을 교장 선생님이 "심장병 때문에 체육시간에 친구들을 부럽게 쳐다보기만 하는 형도를 살려달라"는 편지를 소개한 기 바다이야기고래 사가 한국일보에 실렸다. 우촌은 언론사로 전화해 수술을 자청했고, 이것이 기사화되자 하루만에 100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우촌은 형도를 수술로 완치시키고 부모를 찾아가 "남은 성금으로 다른 아이들도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부모가 흔쾌히 승락해 2명을 더 살렸다. '내 병원이 있으면 전국의 수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주위에선 대부분 말렸다. 스승 이영균 교수가 소장으로 부임한 서울대병원 병원연구소의 직원에게 컨설팅 받으러 갔더니 첫 마디가 "심장전문병원은 무리이니 백화점식 병원을 설립하는 게 어떻겠냐?"였다.
그럴수록 가슴이 더 타올랐다. 병원 부지를 찾고, 자기 분담금을 구하고, 실행 계획을 짰다. OECF 지원 조건에 맞춰, 당시 의료 사각지대였던 부천에서 1982년 8월 23일 지하 1층, 지상 3층, 100병상의 세종병원을 개원하고 심신을 쏟아부었다. 이발소 갈 시간을 아끼려고 삭발하고 경영과 진료에 매진했다. 자연스레 각종 기록이 쏟아졌고 개원 이듬해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과 함께 심장수술 '빅3'에 올랐다.
-세종병원이 단기간에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박영관) 회장님은 독일 뒤셀도르프대병원 연수를 마치며 가져온 매뉴얼과 미국 메이요 병원에서 연수하며 배운 시스템을 새 병원에 적용했다. 매일 아침 6개 부서 의료진이 전날 환자의 진단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아침 콘퍼런스'는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을 줬다. 민간 병원이지만 대학병원에서도 하기 힘든 '3일 세미나'와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학술지도 발간했다. 의사들을 해외 연수 보내며 항공기, 체재비를 전액 지원했다. 간호사, 행정직원의 교육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장비는 최첨단 최고 사양을 고집했다."
대학병원들은 이곳 의사들을 스카우트하려 경쟁을 벌였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개원 때에도 흉부외과는 이곳 출신들로 채워 '심장 사관학교' 별명이 붙었다. 우촌은 처음엔 공들여 육성한 의사를 빼앗아가는 대학병원이 괘씸했지만, 좋은 의사들이 곳곳에서 더 많은 환자를 살리는 데 보람을 느끼게 됐다.
우촌은 보다 많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부검을 위한 심장 확보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생명을 다한 아이의 부모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장례비를 병원에서 부담하겠으니 협조를 부탁했다가 뺨을 맞은 적도 있다. 진료실에서 화를 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기증을 약속한 보호자와 함께 엉엉 울기도 했다. 우촌은 그렇게 100개 가까운 심장을 기증받았고 병원 의사들은 심장마다 달라붙어 병리 과정과 원인을 캤다. 의료진은 각기 다른 유형 65예를 골라 《선천성 심질환-일상 및 병리와의 상관 관계》라는 영문 서적을 발간했다. 우촌의 뒤를 이어 세종병원을 이끌고 있는 박진식 이사장에게 물었다.
인천세종병원은 선천성·후천성 소아 심장질환은 물론 성장·발달, 감염질환, 호흡기·소화기 질환 등 영유아부터 청소년 건강 전반을 다루는 소아청소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인천세종병원
-'300만 원의 기적'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19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낸시 여사가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한국 어린이 둘과 함께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 오른 사진이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이들을 미국에서 치료한다는 기사를 읽은 아버지는 언론에 '국내에서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일부 환자를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서 전국의 심장병 어린이를 살리자고 호소했다. 조 목사는 적극 응했고, 다음날 교회 뜰이 신문지를 중심으로 폐지 수집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폐지의 판매금과 성금으로 수술비를 지원해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살게 됐다."
한국심장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대한약사회 등 여러 단체가 뜻을 보탰다.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소속 택시 기사들도 열심히 힘을 실었다. 가수 수와 진은 매일 명동성당 앞에서 노래하며 모금했다.
이 무렵 한 남성이 우촌을 찾아왔다. 1981년 돈 때문에 딸을 수술하지 못했던 그 40대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이제 돈이 생겼으니 딸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한 것. 그러나 중학생 딸은 심장과 폐의 기능이 함께 뚝 떨어지는 '아이젠멩거 증후군'이 악화돼 당시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 국립심장센터 마그디 야코브 박사를 소개했지만 그도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딸은 4년 뒤 하늘나라로 떠났고, 아버지는 흐느끼며 우촌의 손을 잡았다. 자신처럼 후회하는 아버지가 없도록 써 달라고 치료비를 기탁하며….
1986년 세종병원은 심장 수술을 받고 건강을 찾은 300명을 초청해서 운동회를 열었다. 아이들이 하얀 운동복을 입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던 우촌의 입은 웃고 있는데, 어인 일일지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보람의 눈물이 교차하며 선천성 심장병 희생자가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한편으로는 의료보험 혜택이 커진 것도 영향이 컸다.
세종병원은 우리가 외국 도움을 받았듯, 이제는 도움을 줘야 한다며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9년 중국 옌볜(延邊)의 동포 아이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베트남 등의 아기 1600여 명을 살렸다. 올해 1월에도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켰던 에티오피아의 심장병 어린이 5명을 살리고 붉은 입술을 찾아줘 모국으로 돌려보냈다.
-이사장은 언제 병원에 합류했나?
"2008년이다. 아버지의 건강에 적신호가 생긴 때였다. 아버지는 병원 개원 초기 아이를 잃으면 찢어질 듯한 심장을 달래기 위해 심장에 독이라는 줄담배를 피웠고, 그러다 뇌경색으로 입원했다. 이후 심근경색과 고관절 골절로 장기 입원했고 2008년엔 우울증까지 앓으며 힘들어했다."
우촌은 이전에 교사 출신인 부인 정란희 여사에게 부탁, 병원 경영의 일부를 맡겼다. 정 여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경영대학원, 연세대, 카이스트, 이화여대, 숙명여대 최고경영자과정 등에 등록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병원 경영 최적화와 건물 리모델링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병원 전체가 운항하는 데에는 심장을 잘 알고 책임감 있는 의사가 절실했다.
서울대병원 심장내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군의관 때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던 박 이사장은 기획실장으로 합류하자마자 병원의 미래에 대해 직원 7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고, 방송통신대학 교수와 함께 이를 분석, 병원의 비전과 청사진을 도출했다.
박 이사장은 또 미국 100대 심장병원에 이메일을 보내 협력 요청을 했고, 20여 곳에서 긍정 답변을 받았다. 병원 경영진은 7박8일 일정으로 미국 협력 병원들을 '순례'했다. 박 이사장은 "원장 임명 전에 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노영무 당시 병원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협력 병원 중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 의대 하네만 병원으로 향했다. 박 이사장은 1년 연수 계획이었지만 인천세종병원 건립이 가시화되면서 8개월만에 귀국했다.
박 이사장은 병원 살림을 맡자마자 당시 거금이었던 40억 원을 들여 전산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경영의 난맥이 정확히 잡혔고, 임직원을 설득할 자료와 근거가 확보됐다. 전산화 1년 만에 외래 환자가 30% 증가하는 실적도 나왔다.
세종병원은 이를 시작으로 디지털 의료의 선두에 섰다. 2008년 인피니티와 함께 심장 영상전달시스템(PACS)을 처음 개발, 도입했고, 2017년엔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뷰노와 함께 입원 환자의 심장 발작 징후를 미리 알 수 있는 시스템 '이지스'를 개발했다. 곧이어 메디컬(Medical) AI 사와 심전도 영상을 심층 분석하는 솔루션 AiTA를 공동 개발했다. 2023년에는 중소병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스마트 병원 선도 모델 개발 지원 사업' 주관사로 선정돼 10개 중소병원에서 안전한 투약 시스템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또 박 이사장이 경영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심장내과가 강화돼 수술 중심 병원에서 진료, 시술과 수술이 균형을 이루는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2011년엔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의사가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국내 최초로 개설했다.
박진식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이사장이 인천세종병원 내 심장혈관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전문기자
-세종병원이 서울의 빅4 병원에 못지 않는 경쟁력이라면?
"심장병은 빠른 진료가 생명을 좌우한다. 시간이 생명인 셈이다. 환자는 진료 기다리다가, 심지어 병원에 가던 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대학병원은 대부분 심장내과나 흉부외과가 여러 과의 하나여서 이런 특성을 반영하기 쉽지 않다. 세종병원은 당일 검사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곧바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우리 병원에선 '1.3.7 원칙'을 중시하는데 환자가 한 번 전화에 연결이 되고, 3일 내 진료를 받으며, 7일 안에 시술 또는 수술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병원 응급실엔 365일 24시간 심장질환을 직접 치료하는 전문의가 대기한다. 전공의가 대기하다가 비상연락해서 전문의를 부르는 다른 병원과 다른 점이다. 우리는 이런 당번 근무에 동의하는 의사만 뽑는다."
무엇보다 세종병원 의사들 사이에 흐르는,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독기 어린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2023년 10월 홍콩의 대형 병원으로부터 한국인 유학생 A 씨가 심정지 상태에서 중환자실의 에크모에 의지하고 있다는 SOS를 받았다. A 씨 역시 아이젠 멩거 증후군 환자였다. 예전엔 악화되면 죽는 병이었지만, 요즘엔 심장이식이라는 최후의 방법이 있다.
병원 긴급회의에서 이창하 부원장은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쟁터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의료진은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환자를 이송한 뒤 좌심실보조장치(엘바드) 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8개월 뒤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 받는 수술을 받고 4개월만에 퇴원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재활치료를 받고 있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주치의에게 물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최지연 기자 (medlima@kormedi.com)
선천 심장병으로 입술이 파란 아이들. 예닐곱 살 전에 수술 받으면 평생 건강히 살 수 있지만, 1980년 초만 해도 숱한 아이가 치료시기를 놓치고 시름시름 앓다가 부모 가슴에 통한(痛恨)의 응어리를 남기고 먼저 떠나야만 했다.
세종병원은 집값과 맞먹는 수술비 때문에 아이들이 속절없이 숨지는 것을 격감시킨, 세계 의학사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병원이다. 설립자 우촌 박영관 회장은 심장병 어린이 가족과 함께 눈물 흘리다 "심장병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의료 불모지 부천에 심장 전문병원을 세웠다. 주위에서 한 야마토무료게임 결같이 뜯어말렸지만 한편으로 독지가를 찾아다니고, 한편으로는 수술실에서 영혼을 녹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세종병원은 국내에서 선천 심장병 환자의 1/3이 넘는 7000여 명을 수술해서 새 삶을 찾아줬으며, 해외 어린이 환자 1600여 명에게도 새 생명을 안겨줬다. 우촌은 정작 자신의 건강을 못챙겨 뇌졸중,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졌다 오션파라다이스예시 회복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아들 박진식 이사장이 인천과 부천의 세종병원을 세계적 병원으로 도약시키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세종병원은 대한민국 흉부외과 발전과 함께 했다"면서 "부천세종병원은 2030년 세계 10대 심장 전문병원에 진입할 것이고, 2017년 문을 연 인천세종병원은 세계 100대 병원 릴게임골드몽 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윤상선 기자
우촌은 한양대 의대 교수 때인 1981년 한 친척으로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가 일본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차관을 받아 병원 설립비를 장기 저리 바다이야기무료 융자해준다는 것. 딸의 수술비가 당시 집값에 맞먹는 1000만 원이라는 말에 낙담해 진료실을 나가던, 40대 아버지의 어깨 처진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 병원이 있으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텐데….
이 무렵 경남 남해 섬마을 교장 선생님이 "심장병 때문에 체육시간에 친구들을 부럽게 쳐다보기만 하는 형도를 살려달라"는 편지를 소개한 기 바다이야기고래 사가 한국일보에 실렸다. 우촌은 언론사로 전화해 수술을 자청했고, 이것이 기사화되자 하루만에 100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우촌은 형도를 수술로 완치시키고 부모를 찾아가 "남은 성금으로 다른 아이들도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부모가 흔쾌히 승락해 2명을 더 살렸다. '내 병원이 있으면 전국의 수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주위에선 대부분 말렸다. 스승 이영균 교수가 소장으로 부임한 서울대병원 병원연구소의 직원에게 컨설팅 받으러 갔더니 첫 마디가 "심장전문병원은 무리이니 백화점식 병원을 설립하는 게 어떻겠냐?"였다.
그럴수록 가슴이 더 타올랐다. 병원 부지를 찾고, 자기 분담금을 구하고, 실행 계획을 짰다. OECF 지원 조건에 맞춰, 당시 의료 사각지대였던 부천에서 1982년 8월 23일 지하 1층, 지상 3층, 100병상의 세종병원을 개원하고 심신을 쏟아부었다. 이발소 갈 시간을 아끼려고 삭발하고 경영과 진료에 매진했다. 자연스레 각종 기록이 쏟아졌고 개원 이듬해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과 함께 심장수술 '빅3'에 올랐다.
-세종병원이 단기간에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박영관) 회장님은 독일 뒤셀도르프대병원 연수를 마치며 가져온 매뉴얼과 미국 메이요 병원에서 연수하며 배운 시스템을 새 병원에 적용했다. 매일 아침 6개 부서 의료진이 전날 환자의 진단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아침 콘퍼런스'는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을 줬다. 민간 병원이지만 대학병원에서도 하기 힘든 '3일 세미나'와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학술지도 발간했다. 의사들을 해외 연수 보내며 항공기, 체재비를 전액 지원했다. 간호사, 행정직원의 교육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장비는 최첨단 최고 사양을 고집했다."
대학병원들은 이곳 의사들을 스카우트하려 경쟁을 벌였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개원 때에도 흉부외과는 이곳 출신들로 채워 '심장 사관학교' 별명이 붙었다. 우촌은 처음엔 공들여 육성한 의사를 빼앗아가는 대학병원이 괘씸했지만, 좋은 의사들이 곳곳에서 더 많은 환자를 살리는 데 보람을 느끼게 됐다.
우촌은 보다 많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부검을 위한 심장 확보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생명을 다한 아이의 부모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장례비를 병원에서 부담하겠으니 협조를 부탁했다가 뺨을 맞은 적도 있다. 진료실에서 화를 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기증을 약속한 보호자와 함께 엉엉 울기도 했다. 우촌은 그렇게 100개 가까운 심장을 기증받았고 병원 의사들은 심장마다 달라붙어 병리 과정과 원인을 캤다. 의료진은 각기 다른 유형 65예를 골라 《선천성 심질환-일상 및 병리와의 상관 관계》라는 영문 서적을 발간했다. 우촌의 뒤를 이어 세종병원을 이끌고 있는 박진식 이사장에게 물었다.
인천세종병원은 선천성·후천성 소아 심장질환은 물론 성장·발달, 감염질환, 호흡기·소화기 질환 등 영유아부터 청소년 건강 전반을 다루는 소아청소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인천세종병원
-'300만 원의 기적'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19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낸시 여사가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한국 어린이 둘과 함께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 오른 사진이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이들을 미국에서 치료한다는 기사를 읽은 아버지는 언론에 '국내에서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일부 환자를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서 전국의 심장병 어린이를 살리자고 호소했다. 조 목사는 적극 응했고, 다음날 교회 뜰이 신문지를 중심으로 폐지 수집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폐지의 판매금과 성금으로 수술비를 지원해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살게 됐다."
한국심장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대한약사회 등 여러 단체가 뜻을 보탰다.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소속 택시 기사들도 열심히 힘을 실었다. 가수 수와 진은 매일 명동성당 앞에서 노래하며 모금했다.
이 무렵 한 남성이 우촌을 찾아왔다. 1981년 돈 때문에 딸을 수술하지 못했던 그 40대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이제 돈이 생겼으니 딸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한 것. 그러나 중학생 딸은 심장과 폐의 기능이 함께 뚝 떨어지는 '아이젠멩거 증후군'이 악화돼 당시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 국립심장센터 마그디 야코브 박사를 소개했지만 그도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딸은 4년 뒤 하늘나라로 떠났고, 아버지는 흐느끼며 우촌의 손을 잡았다. 자신처럼 후회하는 아버지가 없도록 써 달라고 치료비를 기탁하며….
1986년 세종병원은 심장 수술을 받고 건강을 찾은 300명을 초청해서 운동회를 열었다. 아이들이 하얀 운동복을 입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던 우촌의 입은 웃고 있는데, 어인 일일지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보람의 눈물이 교차하며 선천성 심장병 희생자가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한편으로는 의료보험 혜택이 커진 것도 영향이 컸다.
세종병원은 우리가 외국 도움을 받았듯, 이제는 도움을 줘야 한다며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9년 중국 옌볜(延邊)의 동포 아이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베트남 등의 아기 1600여 명을 살렸다. 올해 1월에도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켰던 에티오피아의 심장병 어린이 5명을 살리고 붉은 입술을 찾아줘 모국으로 돌려보냈다.
-이사장은 언제 병원에 합류했나?
"2008년이다. 아버지의 건강에 적신호가 생긴 때였다. 아버지는 병원 개원 초기 아이를 잃으면 찢어질 듯한 심장을 달래기 위해 심장에 독이라는 줄담배를 피웠고, 그러다 뇌경색으로 입원했다. 이후 심근경색과 고관절 골절로 장기 입원했고 2008년엔 우울증까지 앓으며 힘들어했다."
우촌은 이전에 교사 출신인 부인 정란희 여사에게 부탁, 병원 경영의 일부를 맡겼다. 정 여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경영대학원, 연세대, 카이스트, 이화여대, 숙명여대 최고경영자과정 등에 등록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병원 경영 최적화와 건물 리모델링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병원 전체가 운항하는 데에는 심장을 잘 알고 책임감 있는 의사가 절실했다.
서울대병원 심장내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군의관 때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던 박 이사장은 기획실장으로 합류하자마자 병원의 미래에 대해 직원 7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고, 방송통신대학 교수와 함께 이를 분석, 병원의 비전과 청사진을 도출했다.
박 이사장은 또 미국 100대 심장병원에 이메일을 보내 협력 요청을 했고, 20여 곳에서 긍정 답변을 받았다. 병원 경영진은 7박8일 일정으로 미국 협력 병원들을 '순례'했다. 박 이사장은 "원장 임명 전에 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노영무 당시 병원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협력 병원 중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 의대 하네만 병원으로 향했다. 박 이사장은 1년 연수 계획이었지만 인천세종병원 건립이 가시화되면서 8개월만에 귀국했다.
박 이사장은 병원 살림을 맡자마자 당시 거금이었던 40억 원을 들여 전산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경영의 난맥이 정확히 잡혔고, 임직원을 설득할 자료와 근거가 확보됐다. 전산화 1년 만에 외래 환자가 30% 증가하는 실적도 나왔다.
세종병원은 이를 시작으로 디지털 의료의 선두에 섰다. 2008년 인피니티와 함께 심장 영상전달시스템(PACS)을 처음 개발, 도입했고, 2017년엔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뷰노와 함께 입원 환자의 심장 발작 징후를 미리 알 수 있는 시스템 '이지스'를 개발했다. 곧이어 메디컬(Medical) AI 사와 심전도 영상을 심층 분석하는 솔루션 AiTA를 공동 개발했다. 2023년에는 중소병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스마트 병원 선도 모델 개발 지원 사업' 주관사로 선정돼 10개 중소병원에서 안전한 투약 시스템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또 박 이사장이 경영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심장내과가 강화돼 수술 중심 병원에서 진료, 시술과 수술이 균형을 이루는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2011년엔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의사가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국내 최초로 개설했다.
박진식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이사장이 인천세종병원 내 심장혈관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전문기자
-세종병원이 서울의 빅4 병원에 못지 않는 경쟁력이라면?
"심장병은 빠른 진료가 생명을 좌우한다. 시간이 생명인 셈이다. 환자는 진료 기다리다가, 심지어 병원에 가던 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대학병원은 대부분 심장내과나 흉부외과가 여러 과의 하나여서 이런 특성을 반영하기 쉽지 않다. 세종병원은 당일 검사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곧바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우리 병원에선 '1.3.7 원칙'을 중시하는데 환자가 한 번 전화에 연결이 되고, 3일 내 진료를 받으며, 7일 안에 시술 또는 수술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병원 응급실엔 365일 24시간 심장질환을 직접 치료하는 전문의가 대기한다. 전공의가 대기하다가 비상연락해서 전문의를 부르는 다른 병원과 다른 점이다. 우리는 이런 당번 근무에 동의하는 의사만 뽑는다."
무엇보다 세종병원 의사들 사이에 흐르는,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독기 어린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2023년 10월 홍콩의 대형 병원으로부터 한국인 유학생 A 씨가 심정지 상태에서 중환자실의 에크모에 의지하고 있다는 SOS를 받았다. A 씨 역시 아이젠 멩거 증후군 환자였다. 예전엔 악화되면 죽는 병이었지만, 요즘엔 심장이식이라는 최후의 방법이 있다.
병원 긴급회의에서 이창하 부원장은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쟁터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의료진은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환자를 이송한 뒤 좌심실보조장치(엘바드) 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8개월 뒤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 받는 수술을 받고 4개월만에 퇴원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재활치료를 받고 있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주치의에게 물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최지연 기자 (medlima@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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