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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망유린
조회 0회 작성일 26-02-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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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소년 시대’. 쿠팡플레이 드라마 화면 갈무리
“고추밭 참 개갈 안 나네.”
밭에서 일할 때 동네 어르신이 지나며 툭 던지는 이 한마디는 외지인에게는 암호와 같다. 사전적 의미의 ‘개갈’은 논밭 둑을 다듬는 일을 말하지만, “개갈 안 난다” 하면 본래 뜻은 희미해 지고 “일이 시원치 않다” 거나 “불만족스럽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어르신은 “비가 자주와 고추 작황이 형편 없다”고 한 걸까 아니면 “고추밭에 풀이 너무 우거져 심란해”라고 한 것일까? 듣는 사람이 알아서 온라인야마토게임 판단하거나 되물어야 한다. 이처럼 드러난 표현 보다 속뜻을 읽어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곳, 충청도는 전형적인 ‘고맥락(High-context) 사회’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충청도 사투리
내가 농막을 놓고 주말에 내려가는 공주는 충청도의 본류이다. 조선 시대 충청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감영이 바다이야기오락실 공주에 있었던 걸 보면 안다. 시골에 오면 동네 분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동네 어르신이 쓰는 충청도 사투리가 귀에 착착 감긴다. 그 독특한 표현과 말투에서 이른바 ‘충청도 기질’이 배어 나온다. 묘한 것은 내가 눈길 주지 않았던 나 자신의 한구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말에 관해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내가 ‘경계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충청남도 논산으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고향에 사업체를 차려서였다.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니고 대학 때 서울로 다시 왔으니 충청도에서 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살아온 인생에 비할 때 짧은데도 서울에서 나는 여지없는 충청도 사람이다. 내 딴엔 서울말을 반듯하게 쓴다고 생각하지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만 (대학 졸업반 때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본 적도 있다), 남들은 “말투를 보니 딱 충청도네” 한다. 부모의 고향이고 감수성 예민할 때 머문 고장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주말의 나는 ‘서울에서 온 젊은이’가 돼, ‘저분이 무슨 뜻으로 말을 저렇게 하지?’ 하고 곱씹는 사람이다.
부정도 긍정도, 칭찬도 비난도 되는 말
한국릴게임
흔히들 밋밋하다는 충청도 말이지만, 강렬하지 않을 뿐 그 복잡 미묘함은 어느 지역 말 못지않다. 맥락에 따라 같은 말이 부정도 긍정도 되며, 칭찬일 때도 비난일 때도 있다. 드러난 표현보다 속에 담긴 뜻을 알아야 온전히 이해되는 말이다.
그런 신묘함 때문인지 충청도 말은 근래 핫한 문화적 소재가 됐다. 유튜브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콘텐츠가 넘친다. 드라마와 영화도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드러내는 작품이 늘었다. “니가 오늘 한 짓은 말여, 꽃다운 18세 소녀의 마음에 농약을 친 겨” 같은 구성진 대사가 이어지는 10부작 드라마 ‘소년 시대’(2023년 말 방영)는 공주 바로 옆 동네 부여가 무대이다. 1989년 부여농업고등학교(실제 부여에는 그런 학교가 없다)로 전학 온 ‘온양 찌질이’ 장병태(임시완)가 싸움짱인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로 오해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출연자들이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해 충청도 말의 교과서 같았다. 2019년 방영된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배우 강하늘 등 출연자들이 현장감 있는 충청도 사투리를 보여줬다.
충청도 말은 느리고 온화하다. 그래서인지 말하는 사람도 순해 보인다. 말끝을 늘이고 급하지 않게 말 하는데, “빨리 와” 하지 않고 “빨리 와~~” 한다. 독특한 종결어미 ‘햐아’, ‘겨어’, ‘여어’를 써서 길게 끌어주는데, “아 말로 햐아~~”, “왜 그러는 겨어~~” “그래서 내가 귀띔 했쟈녀어~~” 등이다. “밥 먹었슈~” 처럼 유~, 슈~를 길게 발음하는 것도 친근감을 더한다.
“애는 착혀”는 비난일까 칭찬일까
충청도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유를 쓰거나 에둘러 표현할 때가 많다. 듣는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배려하면서 자신도 역공 받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누군가 죽었다는 부고를 전할 때 “엊그제 밥숟갈 놨댜” 하면 듣는 사람 가슴이 덜 아프지 않겠는가. 이들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이 없고 누굴 비판할 일이 있어도 돌려서 말한다. “야, 그 밭에 염소 키우면 좋겠네! ”하면 풀이 너무 자랐으니 좀 깎으라는 뜻이다. 식당에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눈에 띄면 “이건 서비스유?” 한다.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충청도 사람이 “애는 착혀” 하면 칭찬인지 비난인지 듣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충남 경찰이 과속운전 하지 말자고 내건 현수막. 인터넷 갈무리
미용실 물 뜨거우면 “닭 튀겨유?”
비유와 은유를 듬뿍 담아 에둘러 말하면서 ‘유머코드’를 버무리는 것은 충청도 말의 백미이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 물이 너무 뜨거울 때 충청도 사람은 이렇게 외친다 한다. “닭 튀겨유?” 심지어 충청 경찰이 과속하지 말자며 내건 현수막에 “그렇게 바쁘시면 어제 오지 그랬슈”라고 쓰인 게 관내 곳곳에 실제 걸려 있었다. 최양락 (아산), 남희석(보령), 임하룡(단양), 신동엽(제천)을 비롯해 유명 개그맨 중 충청도 출신이 유독 많은 게 충청도 어법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다. ‘충청의 말들’(2024) 이란 책을 쓴 나연만 작가는 충청도 사투리의 은유성, 그것도 사안을 정조준하는 은유성에서 해학이 분출한다고 말한다.
충청도 말은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뜻을 잘 살펴 들어야 한다. 한번은 아내가 “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며 혼자 아쉬워한다. 낮에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준비하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김치가 이걸로 될라나 모르겠네”를 혼잣말처럼 두어 차례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 나이에 내가 하기는 귀찮으니 젊은 자네가 김장김치 좀 꺼내다 더 썰어야겠네”란 말이란 걸 아내는 밥 다 먹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본심이 뭔지 몰라 답답할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선거철이다. 출마한 정치인 와서 “이번에 나 찍을 거쥬?” 하면 “그때 가봐야 알쥬~” 이상의 답을 듣기 어렵다. 한데, 그 정치인이 돌아가려고 악수하고 다닐 때쯤 살짝 다가와서 “그 표가 어디 가남유~” 해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관찰, 거리두기, 우회하기
충남 언론학회가 2023년 말에 펴낸 책 ‘충청도 커뮤니케이션’에는 ‘중원의 균형자, 충청도의 말’이란 논문이 있어 충청도 말의 특성을 학술적으로 분석해 놨다. 저자는 충청도의 지정학, 유교적 윤리의식과 충청도 말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한다. 삼국시대 이래 이 지역이 여러 세력이 쟁탈을 벌이는 전장이 되고 보니 “생존 위협을 줄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으로써 관찰과 거리 두기, 우회하기 같은 말하기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반 인구 비중이 유난히 높은 지역이어서 유교의 가르침 대로 “상대와 나의 체면을 살리고 사회적 관계를 헤치지 않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하기를 발달시켰다”고 한다. (1909~1910년 일제 통감부의 전국 호구 조사에서 충청남도는 전체 가구 수의 10.3%가 양반으로 파악돼, 전국 평균인 1.9%의 5배가 넘었다. 조선 13도 가운데 으뜸인데, ‘양반의 고장’ 이란 말이 무색지 않은 통계이다.)
강하늘 배우가 충청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KBS 드라마 화면 갈무리
말은 굼떠 보여도 과감한 행동
재미있는 점은 충청도 말이 느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느릿한 말투를 ‘극강의 효율성’으로 보완한다. “자네 보신탕 먹는가?”라는 문장은 “개혀?” 두 글자로 압축되며, ‘이이’라는 단어 하나는 억양과 높낮이에 따라 ‘맞아’, ‘아니야’, ‘뭐라고?’, ‘이해했어’ 등 여러 가지 답변을 대신한다. 드라마 ‘소년 시대’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짜장면 집에서 고등학생 왈패 녀석들이 “이!” (우리는 하나인 겨) 하면 “이이~~”(맞아, 우리는 하나여) 하며 소주잔을 부딪친다.
더욱 놀라운 반전은 말과 대비되는 그들의 행동에 있다. 평소엔 굼떠 보여도 마음먹은 일에는 거침이 없고 과감하다.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물통 폭탄을 던진 윤봉길(예산) 의사를 비롯해 유관순(천안), 김좌진(홍성)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충청도에서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누가 던질 텐가?”라는 물음에 “일단 줘 봐유~”라고 무심하게 답했을 법한 그들의 강단은 충청도식 기질의 정수를 보여준다.
충청도는 국토의 중원이면서 경계에 놓인 공간이다. 영남, 호남, 수도권, 강원과 맞닿아 이방의 풍속과 물상이 흘러들어 관통하고 섞여 독특한 생활양식과 성향을 빚어냈다. 충청도의 말은 그런 ‘충청도 기질’을 보여주는 ‘고갱이’이다.
귀농이든 5도 2촌이든, 시골 마을에서 겉돌지 않으려면 그들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투리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불어 충청도와 서울에 걸친 ‘경계인’ 나에게는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 지를 들여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충청도 말의 은근한 온도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건네는 ‘고맥락의 다정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농막 ‘이런 곳’에 지어야 후회 안 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travel/1201444.html?h=s
▶‘느낌’에 확신을 더하라…농지 구매 체크리스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3797.html?h=s
▶농지를 놀렸더니, 경고장이 날아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6246.html?h=s
▶농막에서 빚어 먹는 막걸리와 쑥인절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1776.html?h=s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고추밭 참 개갈 안 나네.”
밭에서 일할 때 동네 어르신이 지나며 툭 던지는 이 한마디는 외지인에게는 암호와 같다. 사전적 의미의 ‘개갈’은 논밭 둑을 다듬는 일을 말하지만, “개갈 안 난다” 하면 본래 뜻은 희미해 지고 “일이 시원치 않다” 거나 “불만족스럽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어르신은 “비가 자주와 고추 작황이 형편 없다”고 한 걸까 아니면 “고추밭에 풀이 너무 우거져 심란해”라고 한 것일까? 듣는 사람이 알아서 온라인야마토게임 판단하거나 되물어야 한다. 이처럼 드러난 표현 보다 속뜻을 읽어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곳, 충청도는 전형적인 ‘고맥락(High-context) 사회’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충청도 사투리
내가 농막을 놓고 주말에 내려가는 공주는 충청도의 본류이다. 조선 시대 충청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감영이 바다이야기오락실 공주에 있었던 걸 보면 안다. 시골에 오면 동네 분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동네 어르신이 쓰는 충청도 사투리가 귀에 착착 감긴다. 그 독특한 표현과 말투에서 이른바 ‘충청도 기질’이 배어 나온다. 묘한 것은 내가 눈길 주지 않았던 나 자신의 한구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말에 관해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내가 ‘경계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충청남도 논산으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고향에 사업체를 차려서였다.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니고 대학 때 서울로 다시 왔으니 충청도에서 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살아온 인생에 비할 때 짧은데도 서울에서 나는 여지없는 충청도 사람이다. 내 딴엔 서울말을 반듯하게 쓴다고 생각하지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만 (대학 졸업반 때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본 적도 있다), 남들은 “말투를 보니 딱 충청도네” 한다. 부모의 고향이고 감수성 예민할 때 머문 고장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주말의 나는 ‘서울에서 온 젊은이’가 돼, ‘저분이 무슨 뜻으로 말을 저렇게 하지?’ 하고 곱씹는 사람이다.
부정도 긍정도, 칭찬도 비난도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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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밋밋하다는 충청도 말이지만, 강렬하지 않을 뿐 그 복잡 미묘함은 어느 지역 말 못지않다. 맥락에 따라 같은 말이 부정도 긍정도 되며, 칭찬일 때도 비난일 때도 있다. 드러난 표현보다 속에 담긴 뜻을 알아야 온전히 이해되는 말이다.
그런 신묘함 때문인지 충청도 말은 근래 핫한 문화적 소재가 됐다. 유튜브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콘텐츠가 넘친다. 드라마와 영화도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드러내는 작품이 늘었다. “니가 오늘 한 짓은 말여, 꽃다운 18세 소녀의 마음에 농약을 친 겨” 같은 구성진 대사가 이어지는 10부작 드라마 ‘소년 시대’(2023년 말 방영)는 공주 바로 옆 동네 부여가 무대이다. 1989년 부여농업고등학교(실제 부여에는 그런 학교가 없다)로 전학 온 ‘온양 찌질이’ 장병태(임시완)가 싸움짱인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로 오해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출연자들이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해 충청도 말의 교과서 같았다. 2019년 방영된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배우 강하늘 등 출연자들이 현장감 있는 충청도 사투리를 보여줬다.
충청도 말은 느리고 온화하다. 그래서인지 말하는 사람도 순해 보인다. 말끝을 늘이고 급하지 않게 말 하는데, “빨리 와” 하지 않고 “빨리 와~~” 한다. 독특한 종결어미 ‘햐아’, ‘겨어’, ‘여어’를 써서 길게 끌어주는데, “아 말로 햐아~~”, “왜 그러는 겨어~~” “그래서 내가 귀띔 했쟈녀어~~” 등이다. “밥 먹었슈~” 처럼 유~, 슈~를 길게 발음하는 것도 친근감을 더한다.
“애는 착혀”는 비난일까 칭찬일까
충청도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유를 쓰거나 에둘러 표현할 때가 많다. 듣는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배려하면서 자신도 역공 받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누군가 죽었다는 부고를 전할 때 “엊그제 밥숟갈 놨댜” 하면 듣는 사람 가슴이 덜 아프지 않겠는가. 이들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이 없고 누굴 비판할 일이 있어도 돌려서 말한다. “야, 그 밭에 염소 키우면 좋겠네! ”하면 풀이 너무 자랐으니 좀 깎으라는 뜻이다. 식당에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눈에 띄면 “이건 서비스유?” 한다.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충청도 사람이 “애는 착혀” 하면 칭찬인지 비난인지 듣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충남 경찰이 과속운전 하지 말자고 내건 현수막. 인터넷 갈무리
미용실 물 뜨거우면 “닭 튀겨유?”
비유와 은유를 듬뿍 담아 에둘러 말하면서 ‘유머코드’를 버무리는 것은 충청도 말의 백미이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 물이 너무 뜨거울 때 충청도 사람은 이렇게 외친다 한다. “닭 튀겨유?” 심지어 충청 경찰이 과속하지 말자며 내건 현수막에 “그렇게 바쁘시면 어제 오지 그랬슈”라고 쓰인 게 관내 곳곳에 실제 걸려 있었다. 최양락 (아산), 남희석(보령), 임하룡(단양), 신동엽(제천)을 비롯해 유명 개그맨 중 충청도 출신이 유독 많은 게 충청도 어법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다. ‘충청의 말들’(2024) 이란 책을 쓴 나연만 작가는 충청도 사투리의 은유성, 그것도 사안을 정조준하는 은유성에서 해학이 분출한다고 말한다.
충청도 말은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뜻을 잘 살펴 들어야 한다. 한번은 아내가 “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며 혼자 아쉬워한다. 낮에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준비하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김치가 이걸로 될라나 모르겠네”를 혼잣말처럼 두어 차례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 나이에 내가 하기는 귀찮으니 젊은 자네가 김장김치 좀 꺼내다 더 썰어야겠네”란 말이란 걸 아내는 밥 다 먹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본심이 뭔지 몰라 답답할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선거철이다. 출마한 정치인 와서 “이번에 나 찍을 거쥬?” 하면 “그때 가봐야 알쥬~” 이상의 답을 듣기 어렵다. 한데, 그 정치인이 돌아가려고 악수하고 다닐 때쯤 살짝 다가와서 “그 표가 어디 가남유~” 해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관찰, 거리두기, 우회하기
충남 언론학회가 2023년 말에 펴낸 책 ‘충청도 커뮤니케이션’에는 ‘중원의 균형자, 충청도의 말’이란 논문이 있어 충청도 말의 특성을 학술적으로 분석해 놨다. 저자는 충청도의 지정학, 유교적 윤리의식과 충청도 말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한다. 삼국시대 이래 이 지역이 여러 세력이 쟁탈을 벌이는 전장이 되고 보니 “생존 위협을 줄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으로써 관찰과 거리 두기, 우회하기 같은 말하기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반 인구 비중이 유난히 높은 지역이어서 유교의 가르침 대로 “상대와 나의 체면을 살리고 사회적 관계를 헤치지 않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하기를 발달시켰다”고 한다. (1909~1910년 일제 통감부의 전국 호구 조사에서 충청남도는 전체 가구 수의 10.3%가 양반으로 파악돼, 전국 평균인 1.9%의 5배가 넘었다. 조선 13도 가운데 으뜸인데, ‘양반의 고장’ 이란 말이 무색지 않은 통계이다.)
강하늘 배우가 충청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KBS 드라마 화면 갈무리
말은 굼떠 보여도 과감한 행동
재미있는 점은 충청도 말이 느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느릿한 말투를 ‘극강의 효율성’으로 보완한다. “자네 보신탕 먹는가?”라는 문장은 “개혀?” 두 글자로 압축되며, ‘이이’라는 단어 하나는 억양과 높낮이에 따라 ‘맞아’, ‘아니야’, ‘뭐라고?’, ‘이해했어’ 등 여러 가지 답변을 대신한다. 드라마 ‘소년 시대’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짜장면 집에서 고등학생 왈패 녀석들이 “이!” (우리는 하나인 겨) 하면 “이이~~”(맞아, 우리는 하나여) 하며 소주잔을 부딪친다.
더욱 놀라운 반전은 말과 대비되는 그들의 행동에 있다. 평소엔 굼떠 보여도 마음먹은 일에는 거침이 없고 과감하다.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물통 폭탄을 던진 윤봉길(예산) 의사를 비롯해 유관순(천안), 김좌진(홍성)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충청도에서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누가 던질 텐가?”라는 물음에 “일단 줘 봐유~”라고 무심하게 답했을 법한 그들의 강단은 충청도식 기질의 정수를 보여준다.
충청도는 국토의 중원이면서 경계에 놓인 공간이다. 영남, 호남, 수도권, 강원과 맞닿아 이방의 풍속과 물상이 흘러들어 관통하고 섞여 독특한 생활양식과 성향을 빚어냈다. 충청도의 말은 그런 ‘충청도 기질’을 보여주는 ‘고갱이’이다.
귀농이든 5도 2촌이든, 시골 마을에서 겉돌지 않으려면 그들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투리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불어 충청도와 서울에 걸친 ‘경계인’ 나에게는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 지를 들여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충청도 말의 은근한 온도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건네는 ‘고맥락의 다정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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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 ‘이런 곳’에 지어야 후회 안 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travel/1201444.html?h=s
▶‘느낌’에 확신을 더하라…농지 구매 체크리스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3797.html?h=s
▶농지를 놀렸더니, 경고장이 날아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6246.html?h=s
▶농막에서 빚어 먹는 막걸리와 쑥인절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1776.html?h=s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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