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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망유린
조회 28회 작성일 26-02-0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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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18일 쓰고 7월23일 발신
작가님 계신 파주에 비가 많이 왔지요?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어지고 열차가 멈추었다는 파주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지난해 이 무렵 제가 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도 폭우가 사납게 지나갔습니다. 산에 바짝 붙은 집에 흙이 무너져 내려 안타깝게도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이따금 춘양성당에 가면 먼저 인사를 건네시던 자상한 분이었는데 사고 소식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1주기 추도 미사를 지난 일요일에 성당에서 엄숙하게 드렸어요. 읍내로 나가는 도로와 춘양역을 잇는 철로가 아직도 온 릴게임손오공 전히 복구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작년의 공포를 떠오르게 하는 파주의 재난 소식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작가님이 무탈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피해가 없는 게 맞겠지요?
보내주신 파주발 서신에 답장을 어떻게 더 잘 써볼까,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고 매정하게 지나가더군 게임몰릴게임 요. 작가님의 편지를 받은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를 보름, 한 달, 두 달, 세 달로 고쳐 쓰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민망해졌습니다.
쓰고 있던 소설은 무사히 마무리하셨나요? 지난 편지에서 알려주신 대로면 여름이 깊었으니 새로운 장편 작업에 들어가셨을 것도 같습니다.
바다이야기온라인
경북 울진에서 산불이 난 후 찍은 다 타버린 꼬리진달래와 돋아난 새순. ⓒ허태임 제공
직장 생활을 하는 저에게 릴게임종류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근무하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수목원에 출근해서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쓰기는 합니다. 상부에 올리는 결재 서류, 연구보고서와 논문, 연구비 처리를 위한 행정 문서 따위지요. 결재권자와 학회지의 성향, 연구비 집행 매뉴얼같이 어떤 기준에 맞추어 써야 하는 그러한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저를 잃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바다이야기APK 적지 않습니다.
근무시간 외에 할 수 있는 글쓰기가 그래서 제게는 저 스스로를 복원해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일 퇴근 후에는 긴장했던 심신이 노곤하게 풀려서 쓸 엄두를 못 내는 편이고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과 그 밖의 공휴일을 제가 쓰고 싶었던 글쓰기와 벼르던 책 읽기를 하며 보냅니다.
제가 하는 일, 그러니까 식물분류학자의 직업에 대한 에세이가 계획대로면 올해 나와야 하는데 막바지 원고 작업이 좀처럼 속도가 안 나서 아마도 내년 봄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사 잡지에 〈허태임의 산들산들〉을 매달 연재하고, 간간이 들어오는 청탁 원고를 가까스로 마감하고 돌아보면 ‘글 노동’에 매달리지 않고 보내는 주말이 있기는 했던가 깨닫기도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기보다는 쓰기 위하여 읽는 일이 먼저일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겨울이 오면 작가님 말씀처럼 우리, 제대로 게을러질 수 있을까요?
기후재난에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지난 2월 중순 작가님의 편지가 도착한 그날 저는 미국 출장길에 오르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밤낮이 바뀌는 그 낯선 곳에서는 어쩐지 근무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무언가를 써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쓰는 글 말고 작가님께 어서 빨리 답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어요. 아껴두었던 엽서 여러 장을 고르고 골라 배낭에 넣은 건 일종의 러브레터를 태평양을 건너는 하늘에서 써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타국에서의 단상과 자극을 작가님한테 도손대야지. 외출은 왜 안 하시는지, 그럼 전에는 고양이가 있었는지, 봉화에 오기는 하실 건지를 묻고 싶어서 수없이 엽서를 만지작거렸습니다만, 빈 엽서 그대로 다시 짐을 챙겨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엄청난 무력감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던 팟캐스트에 나가게 되며 작가님을 제가 처음 만난 게 2022년 10월 마지막 수요일이었던가요. 그때 저는 제가 근무하는 수목원의 ‘보전연구실’ 소속이었습니다. 지금은 ‘생태복원연구실’로 자리를 옮겼지요. 전에는 희귀식물이 숨어 사는 깊은 산속을 탐사하는 일이 주였다면, 요즘은 저, 망가진 산을 주로 찾아갑니다. 유엔 환경협약이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훼손된 육지와 해양의 30%를 생태적으로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하며 제가 일하는 수목원도 복원 연구에 전보다 힘을 싣게 되었습니다. 울창했던 숲이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훼손되었는지를 밝히고 더한 파괴가 없도록 방책을 탐구합니다. 원래의 건강했던 모습, 그러니까 망가지기 이전의 모습을 인간보다는 야생의 동물과 식물의 입장에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를 제가 속한 부서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합니다.
산불이 나기 전에 찍은 꼬리진달래.ⓒ허태임 제공
그중 하나가 울진 산불피해지 생태복원 프로젝트입니다. 2022년 3월 울진과 삼척 일대를 할퀴고 간 대형 산불로 우리는 체감했죠. 기후변화-온난한 겨울과 이례적인 봄 가뭄-가 산불을 한없이 키울 수 있다는 걸요. 그 산불로 울진과 삼척에는 여의도 면적의 46배에 달하는 산림이 파괴되었습니다. 피해가 난 곳은 생태적으로 특히 중요한 곳이었어요. 꼬리진달래라는 식물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희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땅이자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의 국내 최대 서식지 중 한 곳이기도 해서요.
미국 서부의 오리건주에 출장을 간 건 산불이 더 크게 더 자주 일어나는 그곳에서 그간 축적한 경험을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코밸리스에 있는 오리건 주립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아메리카 그 넓은 대륙에서 유일하게 산림 분야 단과대학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이자, 산불과 관련된 연구를 주도하는 곳이지요. 작가님께서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신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의 저자 수잔 시마드 박사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숲에 사는 나무들이 땅속 균류를 통해 교감하고 서로를 돌보는” 그러한 연구들은 시마드 박사가 모교에 머물던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책에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숲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관계와 현상을 수십 년에 걸쳐 관찰하고 분석하는 장기 모니터링 연구는 산림과학의 중요한 연구 방법 중 하나입니다.
대형 산불로 사라진 숲을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숲을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숲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할까? 그러한 질문에 답을 얻으려 오리건 주립대 산림학과의 장기 모니터링 연구지를 직접 찾은 거였어요. 문서가 담지 못하는 더 많은 과학적 정보를 현장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림정책을 새롭게 세우거나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도 동행했습니다. 현장 과학의 그러한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들은 국내 적용 가능성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결과를 당장 알 수 없는 장기 연구에 예산을 지속해서 투입하는 게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오리건주 북쪽으로 워싱턴주가 바짝 붙어 있고 그 두 주를 길게 잇는 케스케이드 산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백두대간과 형세가 비슷하고 영서와 영동의 기후가 확연히 다른 것 또한 유사합니다.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에서는 그 산맥의 다양한 지형에서 복원 연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인근 산림청 부설 연구소와 함께 산불에 강한 숲, 건강한 숲을 유지하는 비결, (어머니 나무가 많은) 오래된 숲에 대해서요. 시애틀은 왕벚나무가 아름답게 피는 도시. 우리나라보다 벚꽃이 한 달가량 일찍 만개하는데 제가 머물던 시기에 개화가 막 시작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아름다운 꽃 풍경을 보고 있으니 작가님 댁 나무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머지않아 앵두나무와 서부해당과 라일락이 순서대로 하얗거나 분홍빛으로 피겠구나 하고요. 꽃들 다 지고 잎이 무성해지는 어떤 날에 작가님은 소설책 펼쳐놓고 볕뉘를 받겠구나 떠올려보면서요.
보름달이 뜬 밤에 작가님은 제게 편지를 쓰고 계셨지요. 그때 저는 제 몸속의 피를 몸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월경주기가 저는 보름달이 뜨는 주기와 엇비슷합니다. 몸 돌볼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도 달이 차는 걸 보면 알게 됩니다. 아, 내 뱃속 깊은 곳에서 자궁내막이 허물어지고 있구나. 여자의 신체 변화와 자연의 주기가 일치하는 건 참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엄마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듯 당신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멘스’라는 단어를 사춘기를 통과하던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월경이나 생리보다 그 말을 먼저 가르쳐 준 거였어요. 멘스는 생리를 말하는 의학 용어 ‘Menstruation’의 줄임말로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mensis)와 그리스어(mene)에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달빛 머금은 그 단어를 그런데 우리 엄마는 왜 소리 내지 말라고 제게 일러주었던 걸까요. 일찍이 엄마의 엄마에게서 그러한 방식을 배웠던 것일까요. 인간이라는 종이 존속되려면 모름지기 생리가 있어야 하는데 일부 인간은 왜 아직도 그 거룩한 의식을 금기시하고 불순하다고까지 여기는 걸까요. 생리가 없었다면 우리 인간 모두는 존재하지 못했겠지요. 재밌는 것이 고대에는 월경주기가 달의 주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과학은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매듭지었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히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를 맞닥뜨릴 때야말로 과학을 독실하게 믿는 제가 있는 그대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찰나입니다.
뿌리를 기억하는 여린 식물의 향기
야생의 풍란은 멸종위기종이다.ⓒ허태임 제공
겨울 동안 다락방에 들여놓았을 오렌지 재스민은 작가님 손에 이끌려 다시 베란다로 나갔을까요? 볕과 물을 먹고 몸을 키우고 꽃을 피웠을까요? 그 꽃의 향기가 작가님 코를 자극했을까요? 한국에서 맡은 오렌지 재스민 향이 어쩐지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제 개인적으로는 있습니다. 그 식물이 본래 살던 싱가포르에서 맡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향이 났거든요. 고향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힘에 겨운 오렌지 재스민이 대사(代謝) 작용을 제대로 안 해서일까요? 그런 상상은 엉터리일 수 있지요. 들여 키우는 오렌지 재스민과 비슷한 향을 내는 야생식물, 풍란의 향기가 훨씬 우아하다는 사실을 이미 제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름 그대로 바람(風) 난초(蘭)라는 뜻의 풍란. 어부들이 바다에서 짙은 해무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풍란 향기를 맡고 육지가 가까운 걸 알았다고 합니다. 풍란은 재스민과 치자꽃 향기를 버무린 듯한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꼬리처럼 기다란 꽃 뒤꽁무니 깊숙이 향기 통을 품고 그 향기를 너울너울 바다 쪽으로 멀리 더 멀리 보내려는 것만 같죠. 풍란은 여름에 우리나라 남부지방 바닷가 절벽에서 거센 해풍을 맞으며 꽃을 피웁니다. 그 절벽에서 풍란은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 위에 국수 가락 같은 뿌리를 다발로 얹은 채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흙과 물이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비결이지요. 풍란을 ‘착생란’이라고도 합니다. 착생(着生)은 한쪽만 이익이 되는 기생(寄生)과는 사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공중의 수분을 재빠르게 흡수해서 숙주 식물이 좋아할 만한 축축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균류와 초소형 동물이 찾아오는 훌륭한 서식처가 됩니다. 야생의 풍란은 멸종위기종입니다. 우리가 요즘 꽃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풍란은 조직 배양으로 대량 증식하여 판매하는 일종의 복제품이고요.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난초 재배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습니다만, 야생에서는 여전히 불법 채취를 당할 위험에 놓여 있는 생명체가 풍란입니다. 그게 더 희귀하니 더 비싸게 거래된다는 이유에서일 거예요.
풍란에게는 ‘인내’라는 꽃말이 있습니다. 그 작고 여린 식물체가 거칠고 험한 환경에 맞서 맑고 향기롭게 꽃을 피우며 견딜 수 있는 건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뿌리, 하고 작가님이 편지에서 말할 때 저는 너도밤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너도밤나무 뿌리는 일부가 시조새 발등처럼 땅 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사는 너도밤나무를 서양에서는 대표적인 어머니 나무로 여깁니다. 문학은 너도밤나무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유럽 사람들의 말이 있지요? 인간이 기록한 경구나 잠언, 사랑 고백 같은 흉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몇백 년을 살기 때문에 그 말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도밤나무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자작나무 수피처럼 (바로 쓸 수 있는) 종이를 제공하진 않지만, 너도밤나무 그 단단한 수피에 인간은 뾰족한 도구로 문자나 그림을 수없이 새겼을 겁니다. 우리가 책이라고 쓰는 영어 북(Book)과 독일어 브후(Buch)는 그래서 너도밤나무(beech)를 말하는 앵글로색슨어 boc, beece에 뿌리를 둔다고 들었습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찍은 유럽너도밤나무 발등.ⓒ허태임 제공
“너도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니.”
기원전 로마 시인 티불루스가 전쟁을 반대하며 쓴 이 고대 시를 소로는 그의 책 〈월든〉 ‘마을’의 마지막 장에 인용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작가님은 가자지구와 폭죽놀이를 통해 가슴 아픈 현실을 말씀하셨지요. 평화로운 하늘이 사나운 전쟁터로 변하는 현장을요.
“파주 하늘은 넓어서”라는 말이 저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격하게 공감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봉화와 제가 주로 다니는 산길의 하늘은 비교적 좁다고 자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는 ‘세평길’이 있습니다. 산이 높이 솟아 있어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뜻이지요. 세평길 달바위봉 정상에 올라 산 아래 탁 트인 풍경을 내다볼 때 비로소 제 머리 위에서 하늘은 더없이 넓어집니다. 끝없이 펼쳐집니다.
제가 사는 곳 춘양은 ‘봄 춘(春)’에 ‘볕 양(陽)’을 한자로 씁니다. 우리말로 봄볕이지요. 꼭 봄이 아니어도 볕을 쬐기 좋은 동네 같습니다. 그러니 작가님 어서 오셔요. 나무 잎새 사이로 비치는 그 햇볕을 쬐면 참 좋을 거예요.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우리 같이 느껴봐요. 제가 있고 수목원이 있는 이곳을 작가님은 분명 전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7월에 뜬 보름달 가장자리가 이지러지고 있습니다.
춘양에서,
허태임 드림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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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계신 파주에 비가 많이 왔지요?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어지고 열차가 멈추었다는 파주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지난해 이 무렵 제가 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도 폭우가 사납게 지나갔습니다. 산에 바짝 붙은 집에 흙이 무너져 내려 안타깝게도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이따금 춘양성당에 가면 먼저 인사를 건네시던 자상한 분이었는데 사고 소식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1주기 추도 미사를 지난 일요일에 성당에서 엄숙하게 드렸어요. 읍내로 나가는 도로와 춘양역을 잇는 철로가 아직도 온 릴게임손오공 전히 복구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작년의 공포를 떠오르게 하는 파주의 재난 소식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작가님이 무탈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피해가 없는 게 맞겠지요?
보내주신 파주발 서신에 답장을 어떻게 더 잘 써볼까,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고 매정하게 지나가더군 게임몰릴게임 요. 작가님의 편지를 받은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를 보름, 한 달, 두 달, 세 달로 고쳐 쓰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민망해졌습니다.
쓰고 있던 소설은 무사히 마무리하셨나요? 지난 편지에서 알려주신 대로면 여름이 깊었으니 새로운 장편 작업에 들어가셨을 것도 같습니다.
바다이야기온라인
경북 울진에서 산불이 난 후 찍은 다 타버린 꼬리진달래와 돋아난 새순. ⓒ허태임 제공
직장 생활을 하는 저에게 릴게임종류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근무하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수목원에 출근해서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쓰기는 합니다. 상부에 올리는 결재 서류, 연구보고서와 논문, 연구비 처리를 위한 행정 문서 따위지요. 결재권자와 학회지의 성향, 연구비 집행 매뉴얼같이 어떤 기준에 맞추어 써야 하는 그러한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저를 잃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바다이야기APK 적지 않습니다.
근무시간 외에 할 수 있는 글쓰기가 그래서 제게는 저 스스로를 복원해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일 퇴근 후에는 긴장했던 심신이 노곤하게 풀려서 쓸 엄두를 못 내는 편이고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과 그 밖의 공휴일을 제가 쓰고 싶었던 글쓰기와 벼르던 책 읽기를 하며 보냅니다.
제가 하는 일, 그러니까 식물분류학자의 직업에 대한 에세이가 계획대로면 올해 나와야 하는데 막바지 원고 작업이 좀처럼 속도가 안 나서 아마도 내년 봄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사 잡지에 〈허태임의 산들산들〉을 매달 연재하고, 간간이 들어오는 청탁 원고를 가까스로 마감하고 돌아보면 ‘글 노동’에 매달리지 않고 보내는 주말이 있기는 했던가 깨닫기도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기보다는 쓰기 위하여 읽는 일이 먼저일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겨울이 오면 작가님 말씀처럼 우리, 제대로 게을러질 수 있을까요?
기후재난에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지난 2월 중순 작가님의 편지가 도착한 그날 저는 미국 출장길에 오르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밤낮이 바뀌는 그 낯선 곳에서는 어쩐지 근무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무언가를 써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쓰는 글 말고 작가님께 어서 빨리 답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어요. 아껴두었던 엽서 여러 장을 고르고 골라 배낭에 넣은 건 일종의 러브레터를 태평양을 건너는 하늘에서 써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타국에서의 단상과 자극을 작가님한테 도손대야지. 외출은 왜 안 하시는지, 그럼 전에는 고양이가 있었는지, 봉화에 오기는 하실 건지를 묻고 싶어서 수없이 엽서를 만지작거렸습니다만, 빈 엽서 그대로 다시 짐을 챙겨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엄청난 무력감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던 팟캐스트에 나가게 되며 작가님을 제가 처음 만난 게 2022년 10월 마지막 수요일이었던가요. 그때 저는 제가 근무하는 수목원의 ‘보전연구실’ 소속이었습니다. 지금은 ‘생태복원연구실’로 자리를 옮겼지요. 전에는 희귀식물이 숨어 사는 깊은 산속을 탐사하는 일이 주였다면, 요즘은 저, 망가진 산을 주로 찾아갑니다. 유엔 환경협약이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훼손된 육지와 해양의 30%를 생태적으로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하며 제가 일하는 수목원도 복원 연구에 전보다 힘을 싣게 되었습니다. 울창했던 숲이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훼손되었는지를 밝히고 더한 파괴가 없도록 방책을 탐구합니다. 원래의 건강했던 모습, 그러니까 망가지기 이전의 모습을 인간보다는 야생의 동물과 식물의 입장에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를 제가 속한 부서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합니다.
산불이 나기 전에 찍은 꼬리진달래.ⓒ허태임 제공
그중 하나가 울진 산불피해지 생태복원 프로젝트입니다. 2022년 3월 울진과 삼척 일대를 할퀴고 간 대형 산불로 우리는 체감했죠. 기후변화-온난한 겨울과 이례적인 봄 가뭄-가 산불을 한없이 키울 수 있다는 걸요. 그 산불로 울진과 삼척에는 여의도 면적의 46배에 달하는 산림이 파괴되었습니다. 피해가 난 곳은 생태적으로 특히 중요한 곳이었어요. 꼬리진달래라는 식물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희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땅이자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의 국내 최대 서식지 중 한 곳이기도 해서요.
미국 서부의 오리건주에 출장을 간 건 산불이 더 크게 더 자주 일어나는 그곳에서 그간 축적한 경험을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코밸리스에 있는 오리건 주립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아메리카 그 넓은 대륙에서 유일하게 산림 분야 단과대학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이자, 산불과 관련된 연구를 주도하는 곳이지요. 작가님께서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신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의 저자 수잔 시마드 박사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숲에 사는 나무들이 땅속 균류를 통해 교감하고 서로를 돌보는” 그러한 연구들은 시마드 박사가 모교에 머물던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책에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숲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관계와 현상을 수십 년에 걸쳐 관찰하고 분석하는 장기 모니터링 연구는 산림과학의 중요한 연구 방법 중 하나입니다.
대형 산불로 사라진 숲을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숲을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숲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할까? 그러한 질문에 답을 얻으려 오리건 주립대 산림학과의 장기 모니터링 연구지를 직접 찾은 거였어요. 문서가 담지 못하는 더 많은 과학적 정보를 현장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림정책을 새롭게 세우거나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도 동행했습니다. 현장 과학의 그러한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들은 국내 적용 가능성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결과를 당장 알 수 없는 장기 연구에 예산을 지속해서 투입하는 게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오리건주 북쪽으로 워싱턴주가 바짝 붙어 있고 그 두 주를 길게 잇는 케스케이드 산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백두대간과 형세가 비슷하고 영서와 영동의 기후가 확연히 다른 것 또한 유사합니다.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에서는 그 산맥의 다양한 지형에서 복원 연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인근 산림청 부설 연구소와 함께 산불에 강한 숲, 건강한 숲을 유지하는 비결, (어머니 나무가 많은) 오래된 숲에 대해서요. 시애틀은 왕벚나무가 아름답게 피는 도시. 우리나라보다 벚꽃이 한 달가량 일찍 만개하는데 제가 머물던 시기에 개화가 막 시작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아름다운 꽃 풍경을 보고 있으니 작가님 댁 나무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머지않아 앵두나무와 서부해당과 라일락이 순서대로 하얗거나 분홍빛으로 피겠구나 하고요. 꽃들 다 지고 잎이 무성해지는 어떤 날에 작가님은 소설책 펼쳐놓고 볕뉘를 받겠구나 떠올려보면서요.
보름달이 뜬 밤에 작가님은 제게 편지를 쓰고 계셨지요. 그때 저는 제 몸속의 피를 몸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월경주기가 저는 보름달이 뜨는 주기와 엇비슷합니다. 몸 돌볼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도 달이 차는 걸 보면 알게 됩니다. 아, 내 뱃속 깊은 곳에서 자궁내막이 허물어지고 있구나. 여자의 신체 변화와 자연의 주기가 일치하는 건 참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엄마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듯 당신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멘스’라는 단어를 사춘기를 통과하던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월경이나 생리보다 그 말을 먼저 가르쳐 준 거였어요. 멘스는 생리를 말하는 의학 용어 ‘Menstruation’의 줄임말로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mensis)와 그리스어(mene)에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달빛 머금은 그 단어를 그런데 우리 엄마는 왜 소리 내지 말라고 제게 일러주었던 걸까요. 일찍이 엄마의 엄마에게서 그러한 방식을 배웠던 것일까요. 인간이라는 종이 존속되려면 모름지기 생리가 있어야 하는데 일부 인간은 왜 아직도 그 거룩한 의식을 금기시하고 불순하다고까지 여기는 걸까요. 생리가 없었다면 우리 인간 모두는 존재하지 못했겠지요. 재밌는 것이 고대에는 월경주기가 달의 주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과학은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매듭지었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히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를 맞닥뜨릴 때야말로 과학을 독실하게 믿는 제가 있는 그대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찰나입니다.
뿌리를 기억하는 여린 식물의 향기
야생의 풍란은 멸종위기종이다.ⓒ허태임 제공
겨울 동안 다락방에 들여놓았을 오렌지 재스민은 작가님 손에 이끌려 다시 베란다로 나갔을까요? 볕과 물을 먹고 몸을 키우고 꽃을 피웠을까요? 그 꽃의 향기가 작가님 코를 자극했을까요? 한국에서 맡은 오렌지 재스민 향이 어쩐지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제 개인적으로는 있습니다. 그 식물이 본래 살던 싱가포르에서 맡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향이 났거든요. 고향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힘에 겨운 오렌지 재스민이 대사(代謝) 작용을 제대로 안 해서일까요? 그런 상상은 엉터리일 수 있지요. 들여 키우는 오렌지 재스민과 비슷한 향을 내는 야생식물, 풍란의 향기가 훨씬 우아하다는 사실을 이미 제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름 그대로 바람(風) 난초(蘭)라는 뜻의 풍란. 어부들이 바다에서 짙은 해무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풍란 향기를 맡고 육지가 가까운 걸 알았다고 합니다. 풍란은 재스민과 치자꽃 향기를 버무린 듯한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꼬리처럼 기다란 꽃 뒤꽁무니 깊숙이 향기 통을 품고 그 향기를 너울너울 바다 쪽으로 멀리 더 멀리 보내려는 것만 같죠. 풍란은 여름에 우리나라 남부지방 바닷가 절벽에서 거센 해풍을 맞으며 꽃을 피웁니다. 그 절벽에서 풍란은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 위에 국수 가락 같은 뿌리를 다발로 얹은 채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흙과 물이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비결이지요. 풍란을 ‘착생란’이라고도 합니다. 착생(着生)은 한쪽만 이익이 되는 기생(寄生)과는 사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공중의 수분을 재빠르게 흡수해서 숙주 식물이 좋아할 만한 축축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균류와 초소형 동물이 찾아오는 훌륭한 서식처가 됩니다. 야생의 풍란은 멸종위기종입니다. 우리가 요즘 꽃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풍란은 조직 배양으로 대량 증식하여 판매하는 일종의 복제품이고요.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난초 재배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습니다만, 야생에서는 여전히 불법 채취를 당할 위험에 놓여 있는 생명체가 풍란입니다. 그게 더 희귀하니 더 비싸게 거래된다는 이유에서일 거예요.
풍란에게는 ‘인내’라는 꽃말이 있습니다. 그 작고 여린 식물체가 거칠고 험한 환경에 맞서 맑고 향기롭게 꽃을 피우며 견딜 수 있는 건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뿌리, 하고 작가님이 편지에서 말할 때 저는 너도밤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너도밤나무 뿌리는 일부가 시조새 발등처럼 땅 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사는 너도밤나무를 서양에서는 대표적인 어머니 나무로 여깁니다. 문학은 너도밤나무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유럽 사람들의 말이 있지요? 인간이 기록한 경구나 잠언, 사랑 고백 같은 흉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몇백 년을 살기 때문에 그 말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도밤나무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자작나무 수피처럼 (바로 쓸 수 있는) 종이를 제공하진 않지만, 너도밤나무 그 단단한 수피에 인간은 뾰족한 도구로 문자나 그림을 수없이 새겼을 겁니다. 우리가 책이라고 쓰는 영어 북(Book)과 독일어 브후(Buch)는 그래서 너도밤나무(beech)를 말하는 앵글로색슨어 boc, beece에 뿌리를 둔다고 들었습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찍은 유럽너도밤나무 발등.ⓒ허태임 제공
“너도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니.”
기원전 로마 시인 티불루스가 전쟁을 반대하며 쓴 이 고대 시를 소로는 그의 책 〈월든〉 ‘마을’의 마지막 장에 인용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작가님은 가자지구와 폭죽놀이를 통해 가슴 아픈 현실을 말씀하셨지요. 평화로운 하늘이 사나운 전쟁터로 변하는 현장을요.
“파주 하늘은 넓어서”라는 말이 저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격하게 공감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봉화와 제가 주로 다니는 산길의 하늘은 비교적 좁다고 자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는 ‘세평길’이 있습니다. 산이 높이 솟아 있어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뜻이지요. 세평길 달바위봉 정상에 올라 산 아래 탁 트인 풍경을 내다볼 때 비로소 제 머리 위에서 하늘은 더없이 넓어집니다. 끝없이 펼쳐집니다.
제가 사는 곳 춘양은 ‘봄 춘(春)’에 ‘볕 양(陽)’을 한자로 씁니다. 우리말로 봄볕이지요. 꼭 봄이 아니어도 볕을 쬐기 좋은 동네 같습니다. 그러니 작가님 어서 오셔요. 나무 잎새 사이로 비치는 그 햇볕을 쬐면 참 좋을 거예요.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우리 같이 느껴봐요. 제가 있고 수목원이 있는 이곳을 작가님은 분명 전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7월에 뜬 보름달 가장자리가 이지러지고 있습니다.
춘양에서,
허태임 드림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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